그 옛날 조선의 여인들은 흰 분(粉)을 얼굴에 펴 바르고 미묵(眉墨)으로 눈썹을 그리며 볼과 입술에 연지를 발랐다. 그 시대에는 복잡하고 까다로운 방법을 감내하면서까지 아름다움을 얻었던 것이다. 얼굴을 씻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폼 클렌저나 비누가 없던 시절이기에 세안 시 녹두나 팥을 곱게 갈아 만든 가루를 얼굴에 문질러 각질 제거 효과를 보았다. 쌀겨를 우려내어 얼굴을 씻고 창포물에 머리를 감는 것이 그 시대 아낙들이 할 수 있는 피부를 위한 최고의 호사였을 것이다.

문득 생각해보니 나 역시 어린 시절 쌀뜨물로 세안했던 일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당시엔 뭣도 모르고 쌀을 대강 한 번 씻고는 그 물로 세안을 했다(쌀을 처음 씻은 물은 버려야 한다). 쌀뜨물로 세수하면 얼굴이 뽀얘진다는 얘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당시에는 반신반의했지만, 실제로 각종 비타민과 단백질이 풍부해 보습과 미백에 효과가 있단다. 쌀뿐 아니라 정화 효과가 뛰어나 인테리어에 자주 쓰이는 숯도 세안수 재료로 쓰인다. 숯가루 작은 한 스푼을 세안물에 섞어 씻으면, 악취를 흡수하는 숯 본연의 기능처럼 피부 노폐물을 없애고 피부 신진대사를 촉진해 피부를 맑게 해준다. 제사상에 올리는 청주 역시 피부 노폐물 제거와 피부 해독 등의 효과가 있다.

궁금해진 에디터가 직접 청주를 사다가 세안수로 사용해봤다. 알코올 성분 때문에 약간의 열감이 있었으나 그것이 오히려 피부의 혈액 순환을 돕는 듯했다. 시중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홍차 티백도 있다. 홍차의 비타민과 미네랄 성분이 피부를 건강하게 가꾸고, 과도한 피지를 말끔히 제거하는 역할을 하기 때문에 번들거리는 피부가 고민인 지성 피부가 사용하기 적합할 듯. 약재상에서나 구할 법한 진피도 세안을 위한 좋은 재료다. 진피는 귤 껍질을 말린 것인데, 비타민 C가 귤 과육보다 4배나 함유돼 있어 피부를 매끄럽게 하고 혈색을 좋게 만든다. 직접 체험해본 진피 세안수는 일단 향긋한 감귤 향이 하루의 피로를 풀어주었고, 각질 제거제를 사용하지 않아도 피부가 매끈해졌다.

몸을 따뜻하게 하는 쑥 달인 물은 가을에 가장 적합한 세안수라고 할 수 있다. 온도와 습도가 크게 변하는 환절기의 예민한 피부에 소독 효과와 더불어 진정•보습 작용을 하기 때문. 에디터의 피부와 궁합이 가장 잘 맞았기 때문에 저녁마다 세안 마지막에 쑥 세안수로 피부를 가볍게 두드렸다. 쑥의 진한 향을 기대했지만 물과 섞으니 향은 그리 강하지 않았다. 쑥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도 거부감 없이 사용할 수 있을 정도였다. 얼굴을 두드린 후에는 쑥의 잔여물이 남지 않도록 깨끗한 물로 한 번 더 세안했다.

번거로웠지만 피부가 좋아질 거라는 믿음 하나로 일주일간 체험한 결과, 기분 탓일지도 모르지만 세안 직후 피부 톤이 균일해진 것 같았고, 마감 기간에 고개를 내밀던 트러블 수도 확연히 준 것 같다. 세안수는 적어도 3개월의 기간을 두고 꾸준히 해야 효과를 볼 수 있다니 조급함은 금물이라는 것을 명심하자. 밤마다 쑥 달인 물로 얼굴을 마사지하니 마치 황진이라도 된 것처럼 기분이 새롭다. 혹시 아나. 이렇게 꾸준히 세안수로 피부에 공을 들이면 정말 경국지색의 살갗으로 변모할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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